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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글쓰기98

지식적 앎에서 경험적 앎으로 사람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부분적으로 안다. 이는 지식으로 아는 것이다. 이는 비신자들도 가질 수 있는 지식이다. 성도에게는 이러한 지식적인 앎뿐만 아니라 내 삶에서 선하신 사랑의 하나님의 손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갖고 살아야 한다. 내 삶을 들여다 보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전하는 삶을 사는 것이 비로소 성도의 삶인 것이다. 지식적 앎뿐만 아니라 경험적 앎이 있어야 한다. 2019. 6. 27.
비고 빈 마음에 오시옵소서 구유에서 나신 예수님, 가진 것 많지 않으셨던 예수님. 지낼 집을 소유하지 않으셔서 머리 둘 곳 없으셨던 예수님은 비고 빈 우리 마음에 계시길 원하십니다. 빈 손으로 온 나그네 인생은 세상 떠날 때도 비어야 잡음이 없고 마지막 날에 충만함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2019. 6. 26.
마음의 넓이 보이는 공간의 넓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넓이입니다. 내 마음이 넓어지려면 가족과 교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은 나를 담고 있는 마음의 넓이만큼뿐이지만 나뿐만 아니라 가족과 교회와 나라를 위해서도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의 넓이는 그보다도 더 넓기 때문입니다. 2019. 5. 28.
믿음은 의지가 아니라 받는 것입니다. 믿음은 철저히 수동태입니다. 베드로후서에서는 '믿었다'라고 말하지 않고, 믿음을 '받았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믿음'이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 믿음에는 우리가 믿으려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믿지 않으려 합니다. 죄의 습성, 죄의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그 말씀이 죄의 영향력을 이기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 말씀을 가리켜 성령의 검(엡6:17)이라고 말씀합니다. 기록된 말씀, 또한 그 기록된 말씀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그 말씀으로 성령께서 보이지 않게 일하실 때 다시금 우리는 성령으로부터 이미 받은 그 믿음으.. 2019. 5. 2.
대화, 소통의 힘 1. 전통적인 교회, 일반적인 예배의 외적 형식을 갖춘 교회일수록 대화의 가치가 작아져 있는 것을 봅니다. 이런 교회일수록 성도와 성도간의 관계는 예배 전후로 안부를 묻는 정도에 그칩니다. 이런 관계가 하루 이틀, 1년 10년이 되다 보니 아무런 어색함이 없습니다. 당연한 것이 됩니다. 대화하는 것이 특별한 일이 됩니다. 2. 이러한 교회일수록 교회에 처음 온 사람이나 다른 교회를 다니다가 온 사람들이 적응하기가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보통 1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시간은 서너 시간입니다. 한 성도가 모든 예배를 다 나온다고 하더라도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 하는 시간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얼굴은 알지만 다른 성도가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상처가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2019. 4. 22.
이야기가 있는 교회 신앙함에 있어서 도전은 매우 중요한 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도전은 쉽게 되지 않습니다. 도전 앞에는 항상 크고 작은 사건이나 계기가 있습니다. 제 경우는 대부분 만남과 모임에서 도전의 싹이 틉니다. 만남과 모임 자체가 계기인 셈입니다. 그 가운데서 주고 받는 대화와 이야기속에서 도전의식이 꿈틀거립니다. 그리스도인은 도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도전이 시도가 되어야 합니다. 도전하지 않고 안주하거나 건조한 지푸라기처럼 메말라 버린 그리스도인은 결코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이야기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로 모일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모임으로도 모여야 합니다. 이야기가 있는 교회는 무엇인가가 움트는 교회입니다. 그안에서 이해가 사.. 2019. 4. 14.
아픔 뒤에 기쁨 그리스도인은 먼저는 아픔을 알고 후에는 기쁨을 소망하는 사람이다.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사람의 칭찬, 인정은 잠깐 기분을 좋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기쁨이 아니다.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안과 함께 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평안하냐? 라고 물으신 것은 고난 가운데 슬픔 가운데 있던 제자들에게 기쁨을 주시려는 선언이었다. 진정한 기쁨과 위로, 평안은 십자가 밑에서 하나님께만 얻을 수 있다. 2019. 4. 13.
개선의 여지는 대화이다. ​​많은 경우 권위 아래 있는 사람들의 반대, 반발과 저항은 전복이 목적이 아니라 개선이 목적이다. 이러한 양상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는 권위자에게 달려있다. 대체로 선택지는 대화와 무관심이다. 대화는 개선의 여지라도 있다. 그러나 무관심, 묵살은 권위 아래 있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는 것임으로 권위 아래 있는 사람들의 더 큰 반발심과 저항으로 나타나고 마침내 분노로 된다. 이는 개선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아서라기 보다 대화의 상대로 보지 않는 것으로 인한 대화 상대를 상실한 것에서 오는 것이다. '왜?'라는 질문이 커질수록 반발과 저항은 목적마저 틀어지게 한다. 그것이 국가건 교회건... 사람이 모이는 곳은 다 비슷하다. 대화는 정말로 중요하다. 2019. 3. 29.
마음으로 사역하라 한국에서 교회의 사역자들은 셋으로 구분됩니다. 담임, 전임, 파트... 그러나 담임같은 파트도 있고 전임같은 파트도 있으며 파트같은 전임, 담임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2019. 3. 20.
기도는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 기도해도 상황과 관계, 환경이 바뀌지 않을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낙심될 때가 있죠. 많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시간이 흘러 지나가게 되고 돌아보게 되면 외적인 변화가 없어 보였던 그때에 내 생각이 변하고 마음이 변하고 태도가 변하고 있었을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 변화가 너무 미미해서 느껴지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지만 돌아보면 마치 묘목처럼 조금씩 자라왔음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기도하는 사람이 그것을 볼수 있고 감사할수 있는 것 같아요. 기도했던 사람이 기도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때는 기도했던 그 때가 아니라 기도하는 현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기도하려는 마음과 태도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고 그 가운데 은혜가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2019. 3. 19.
기도의 숨을 쉬라 사람은 숨을 쉰다. 살기 위해서 대기의 질에 따라 마스크를 쓰기도 하고 외출을 삼가기도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증거하기 우해 기도하는 사람이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에 하나님의 숨, 성령을 불어넣으신다. 현재 살아 있다고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자연인에서 성도가 되었다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살아야 한다. 2019. 3. 12.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의 관계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담임목사와 소위 말하는 부교역자 이들의 관계는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처럼 서로 사랑하고 존경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 2019. 3. 9.
과부 명부 과부 명부 과부는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관심의 대상이고 관심뿐만 아니라 물질적 도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초대 교회에는 과부 명부가 있을 정도로 과부에 대한 각별한 노력이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과부를 교회가 돌본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도움을 주기 위함일 것이다. 늙고 힘없는 과부, 그녀의 가족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줌으로써 교회가 과부의 가정에 가장이 되는 것 또한 교회의 역할이기 때문에 명부까지 작성하여 도움을 줬던 것은 아닐까? 오늘날 교회는 어떠한가? 과부들에 관한 관심을 귀 기울이고 있나? 과부는 말이 없다. 그 어디에서도 과부는 "내가 과부요"라고 티 내지 않는다. 그들은 교회에서 헌신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고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2019. 2. 15.
세상의 옷과 그리스도의 옷 옷, 가운(세상의 역할)을 벗으면 다 같은 사람이다. 다만 은혜로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이냐 입지 않았느냐만 있을뿐 지금도 그리스도로 옷 입지 않은(못한) 사람을 위해 예수님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삶이 허락되어 있다는 인식하고 살아야 한다. 2019. 2. 13.
기도, 구원의 기쁨과 평강을 회복하는 힘 악한 영들은 감정을 이용한다. 감정으로 사람을 이용해서 호시탐탐 주님께서 허락하신 구원의 기쁨과 평강을 빼앗으려고 한다.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희미하게 하려고 한다. 구원의 기쁨과 평강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기도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기도할 때에 성령께서는 전능의 능력으로 다스리신다. 그때에 악한 영들은 능력의 주님께 복종하며 우리의 믿음은 더 강화된다. 기도로 주님의 능력으로 우리의 마음은 기경되며 주님께서 허락하신 구원의 기쁨과 평강으로 회복된다. 2019.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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