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amGa's Blog :: '어설픈 글쓰기' 카테고리의 글 목록

현실속에서 나를 보니 그리고 내 삶 속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흔적을 더듬으려니 희미하고 불확실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하나님을 믿으려니 신앙이란 것이 캄캄한 동굴에서 등불 하나를 들고 있는 것처럼 되어버린다. 그러나 신앙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나의 하나님이 아닌 성경의 하나님을 생각해야 한다. 나의 하나님에 집중하니 내 모습, 내 죄에 가려 진짜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성경의 하나님은 어떠한가 나의 이해와 논리로 가릴 수 없다.

그분은 밝히 드러내셨다.

창조, 구속을 머나먼 옛 일로 치부하는 순간 그때부터 성경의 하나님이 아닌 지금의 하나님, 내 삶에서의 하나님을 찾게 된다.

구속은 옛 일이 아니다. 그 큰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으며 나의 생명을 위한 일이었고 지금도 진행중이며 훗날 영광스러움으로 완성될 것이다.

동굴과 같은 현재와 현실속에서 등불 하나로 그림자만을 바라보지 말고 눈을 들어 빛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자. 그것이 신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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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이란 어떤 것인가?

사역 使役)
1. 사람을 부리어 일을 시킴. 또는 시킴을 받아 어떤 작업을 함.

기독교인에게 흔히 사역은 목회자가 하는 일을 뜻하거나 직분자가 맡아서 하는 일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내 인생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 특히 내 뜻과 계획과 상관 없이 맡겨진 일, 하게 된 일도 사역의 다른 형태 중 하나이다.

그리스도인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일이라는 인식과 더불어 내가 하게 된 일에 나를 불러주셨다는 소명 의식과 믿음으로 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방관자가 아니시고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사역자로 살아가야 한다. 사역은 교회 안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곁에 있다.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하는 모든 일. 믿음으로 하는 일. 그것이 사역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6)

그리스도인은 내가 해야 하는 일, 내게 맡겨진 일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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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애 이슈가 뜨거운데 내 생각은 이렇다. 동성애 성향을 띈 사람이 생각하기에 선천적이던 후천적이던 정방향의 사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동성애 자체가 그릇된 사랑이라고 본다. 동성애는 중독과 같이 죄성에서 비롯한 하나의 부산물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독이나 동생애나 같은 선상에 있다고 본다. (이 말은 끊기 어려운 것이란 의미다.)


 따라서 선천적인 동성애자이건 후천적인 동성애자이건 중독자가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듯이 동성애를 한순간에 억누를수는 없겠지만 지향하려는 태도에서 전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동성애자들은 사랑 자체로 인정 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인간 사이에서의 사랑은 보이지 않는 사랑 자체만으로 요건이 충족되기 보다는 이성과의 사랑이 사랑의 요건으로 충족된다고 본다.


 또한 인간 관계(1:1)에서의 사랑이란 것은 인류 안에 있는 보편적인 사랑과 달리 성 관계를 필수적으로 포함하기 때문에 더욱이 동성애는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당연히 동성간에 성관계가 있다면 사랑으로 인정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창조 순리상 할 수 없는 성관계가 동성간의 사랑을 배제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보고 있다.)


 요약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미 존재하고 있는 동성애자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교회에서 배척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다른 죄를 포함한 사람들에게도 똑같다.) 동시에 동성애가 바른 사랑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 자체가 배척하는 것처럼 보여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동성애에 대한 부분에서만 해당되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생뚱맞은 성경 인용일수 있고, 궤변 혹은 엉뚱한 적용일지도 몰라 조심스럽지만...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이 말씀은 어떤 면에서 정방향이 아닌 것들을 지향했던(혹은 지향하려는) 보편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정방향으로서의 선언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단정하는게 아니라 가능성에 대한 언급 정도이다. 말 장난으로 보일수도 있겠다.)


 해석, 입장의 차이가 분명한 이슈이고 개인마다 주장이 확고한 이슈라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글이기 보다 평소대로 든 생각이 있어서 써봤다. 다른 동성애 관련 글들도 글마다 본인의 주장이 있고 고집이 있는 것 같다고 할까? 나도그렇다.


 객관적인척 하려 했다면 동성애에 대해 아무런 주장이 없었다면 이 글을 쓸 생각도 안했을 것이다. 내 생각은 이렇고 아마도 이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 솔직한 내 생각이다. 동성애 이슈뿐만 아니라 많은 이슈들에 대한 생각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Posted by Ram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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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진리이다. 신학은 진리를 담는 그릇이다. 이 그릇에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다. 신학을 공부 하는 것은 누군가가 이해한 진리를 공부하는 것이다. 신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통로일뿐 진리 자체는 아니다. 훌륭한 신학도서는 성경을 더 알고 싶게 하고 그로 하여금 과거의 하나님이 현재도 살아계시며 역사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며 소망케 한다.

Posted by Ram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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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의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됨을 확인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 고백이 있을 때 교회는 비로소 세상 속에 있는 교회의 존재를 되새기게 된다. 그 고백을 잊지 않고 확인하는 시간이 바로 함께 모여 예배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 교회의 지체됨을 저해하는 요소, 분열시킬 수 있는 잠재 요소가 있다.


 바로 공적인 자리에서 예배의 자리에서 정치에 대한 이야기, 정당에 관한 사견을 말로 표현할 때이다. 한국의 보수 기독교의 대형교회 목사님들은 이 부분에 상당히 관대하다. 적극적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상당 부분 가시적인 혜택을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진보 기독교의 교회도 규모가 다를 뿐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말하고 비슷한 정치 성향을 가진 성도들과 함께 정치적인 사상을 공유한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정치 성향을 밝히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물론 기독교인들 개개인은 정치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내 안의 정치 성향을 말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선거 때 표로 말하면 된다. 그 이후의 일은 국민으로써는 정치인들에게 맡기고 감시자의 역할로써 또 신앙인으로써는 기도로써 하나님께 말씀드려야 한다. 주께서 말씀하신 하나됨을 힘써 지키는 것 쉽지 않다. 내 자신의 정치 성향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려놓아야 한다. 정치가 말씀보다 높아질 수도 없고 높아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Posted by RamGa
TAG 교회,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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