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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글쓰기98

집에서 기도하기 집에서 기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가족들, TV와 잠자리로 인해 말하고 듣고 보고 눕고 먹는 시간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교회의 예배당과 달리 분위기가 기도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 소리를 포함한 환경이 마치 기도의 장애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기도해야 하는 까닭은 기도하는 것은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살전5:17)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으며(눅5:16) 골방에서 기도할 것을 명하셨기 때문입니다.(마6:6) 그러나 우리는 의무이기 때문에 하는 기도가 아니라 기도하는 것이 기쁨이고 즐거움이기 때문에 기도해야 합니다. 기쁨이 없이 하는 모든 신앙 생활은 오래가지 못하고 짐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종교인이 아닌 그.. 2019. 2. 5.
신앙의 방식을 따라하지 않기 사람은 각기 다른 환경과 시간속에서 살아간다. 누군가는 새벽을 깨우고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하고 누군가는 저녁에 일상을 시작하기도 한다.흔한 말 중에 새벽기도 후에 잠을 자면 은혜를 까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 시간에 말씀 보라는 것이다. 목회자는 새벽기도를 갈 수 없거나 가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기억함으로써 새벽기도가 신앙의 잣대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 (누군가는 아침으로 하루를 시작하지만 누군가는 저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아침에 말씀을 보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 있고 조용한 늦은 밤에 말씀을 보고 잠을 청하는 사람도 있다. 일정한 본문을 따라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더 와닿는 사람이 있지만 조각조각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더 와닿는 사람도 있다. 신앙 생활이란 것은 말그대로 생활.. 2019. 1. 8.
지금, 현실에서의 하나님, 성경의 하나님 현실속에서 나를 보니 그리고 내 삶 속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흔적을 더듬으려니 희미하고 불확실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하나님을 믿으려니 신앙이란 것이 캄캄한 동굴에서 등불 하나를 들고 있는 것처럼 되어버린다. 그러나 신앙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나의 하나님이 아닌 성경의 하나님을 생각해야 한다. 나의 하나님에 집중하니 내 모습, 내 죄에 가려 진짜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성경의 하나님은 어떠한가 나의 이해와 논리로 가릴 수 없다. 그분은 밝히 드러내셨다. 창조, 구속을 머나먼 옛 일로 치부하는 순간 그때부터 성경의 하나님이 아닌 지금의 하나님, 내 삶에서의 하나님을 찾게 된다. 구속은 옛 일이 아니다. 그 큰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으며 나의 생명을 위한 일이었고 지금도 진행중이며 훗날 영광스러움.. 2018. 10. 24.
사역이란 어떤 것인가? 사역이란 어떤 것인가? 사역 使役) 1. 사람을 부리어 일을 시킴. 또는 시킴을 받아 어떤 작업을 함. 기독교인에게 흔히 사역은 목회자가 하는 일을 뜻하거나 직분자가 맡아서 하는 일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내 인생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 특히 내 뜻과 계획과 상관 없이 맡겨진 일, 하게 된 일도 사역의 다른 형태 중 하나이다. 그리스도인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일이라는 인식과 더불어 내가 하게 된 일에 나를 불러주셨다는 소명 의식과 믿음으로 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방관자가 아니시고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사역자로 살아가야 한다. 사역은 교회 안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곁에 있다. 하나님을 의.. 2018. 10. 21.
동성애는 정방향의 사랑이 아니다 동성애 이슈가 뜨거운데 내 생각은 이렇다. 동성애 성향을 띈 사람이 생각하기에 선천적이던 후천적이던 정방향의 사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동성애 자체가 그릇된 사랑이라고 본다. 동성애는 중독과 같이 죄성에서 비롯한 하나의 부산물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독이나 동생애나 같은 선상에 있다고 본다. (이 말은 끊기 어려운 것이란 의미다.) 따라서 선천적인 동성애자이건 후천적인 동성애자이건 중독자가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듯이 동성애를 한순간에 억누를수는 없겠지만 지향하려는 태도에서 전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동성애자들은 사랑 자체로 인정 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인간 사이에서의 사랑은 보이지 않는 사랑 자체만으로 요건이 충족되기 보다는 이성과의 사랑이 사랑의 요건으로 충족된.. 2018. 10. 17.
신학은 진리를 담는 그릇이다. 성경은 진리이다. 신학은 진리를 담는 그릇이다. 이 그릇에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다. 신학을 공부 하는 것은 누군가가 이해한 진리를 공부하는 것이다. 신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통로일뿐 진리 자체는 아니다. 훌륭한 신학도서는 성경을 더 알고 싶게 하고 그로 하여금 과거의 하나님이 현재도 살아계시며 역사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며 소망케 한다. 2018. 10. 15.
교회에서는 정치 성향도 내려놓아야 한다. 신앙의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됨을 확인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 고백이 있을 때 교회는 비로소 세상 속에 있는 교회의 존재를 되새기게 된다. 그 고백을 잊지 않고 확인하는 시간이 바로 함께 모여 예배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 교회의 지체됨을 저해하는 요소, 분열시킬 수 있는 잠재 요소가 있다. 바로 공적인 자리에서 예배의 자리에서 정치에 대한 이야기, 정당에 관한 사견을 말로 표현할 때이다. 한국의 보수 기독교의 대형교회 목사님들은 이 부분에 상당히 관대하다. 적극적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상당 부분 가시적인 혜택을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진보 기독교의 교회도 규모가 다를 뿐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더 .. 2018. 10. 13.
기독교 가정에서의 부모의 역할 여름 방학은 수련회 시즌입니다. 1년 중 교역자들이 가장 바쁘다는 시기입니다. 규모가 있는 교회들은 장소를 빌려 자체적으로 수련회를 열고 규모가 작은 교회는 수련회(캠프) 전문 단체들이 주최하는 수련회(캠프)에 참여합니다. 주일학교는 자체적으로 준비하거나 총회 혹은 어린이 전문 선교단체에서 기획한 것으로 성경학교를 진행합니다. 믿음이 있는 교회에 출석하는 어린이, 청소년들의 부모들은 기대합니다.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변했으면 좋겠다.' '하나님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기대를 갖지만 성경학교, 수련회에서 돌아온 아이들중 몇몇은 기도하면서 울기도 하고 방언도 받았다는데 내 아이는 가기전이나 후나 똑같은 것 같아 실망이 큽니다. 이제는 기대조차 사라졌습니다. 가면 가는 것이고 안가도 그만입니다. 오늘날.. 2018. 7. 25.
디제잉 워십과 예배 음악 예배를 분류한다면 공 예배, 회중 예배, 개인 예배, 영적 예배(삶의 예배)로 할 수 있을 것이다. 회자되고 있는 디제잉 워십을 예배로써 인정하고 예배로 부른다면 성격상 회중 예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중 예배가 예배 참여자의 연령대에 따라 사용되어지는 음악이나 노래(소위 찬양)가 공 예배와 다를 수 있다는 것까지는 인정하고 수긍하는 바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경계는 있다고 본다. 그 경계는 개인적으로 보편성이라고 생각한다. 보편적이지 않은 음악과 노래는 인도자 개인 예배에 회중을 끌어오는 모양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인도자 개인은 그 안에서 예배할 수 있으나 회중은 예배 때 소외되고 마는 것이다. 회중 예배는 이러한 약점(?)이 있다. 따라서 회중 예배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어야.. 2018. 7. 19.
사역은 사람과 함께 역사를 써내려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은 누구에게나 맡겨진 일 즉 사역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사역도 있지만 하나님의 창조 세계 안에서 사람들이 일이라고 부르는 직업이라고 하는 그것이기도 합니다. 사역. 저는 이 단어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사람과 함께 역사를 써내려 가는 것. 그 역사는 세상에 기록으로 남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써내려가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보고 계시고 기억하시니 말입니다. 2018. 6. 25.
하나님의 은혜는 때로는 사람을 당황하게 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때로는 사람을 당황하게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바울은 많은 이들을 당황시켰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이는 이전의 모습에서 변화하길 소망하게 된다. 그 은혜는 하나님의 계명을 더 선명하게 마음 판에 새기게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소망하게 된다. 그러나 옛 모습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마귀는 옛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이러한 우리들의 보혜사로써 함께 계시며 우리를 변호하신다. 너는 이제 옛 사람이 아니라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지나간 너의 모습을 보는 눈을 거두고 의롭다 하신 주님을 바라보라고 나의 모습을 보면 실망과 탄식뿐이지만 이런 나의 모든 것을 사랑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 새로운 소망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2018. 3. 5.
좋은 교회는 성경 중심적인 교회다. 좋은 교회는 성경 중심적인 교회다. 많은 신자들이나, 재치있는 목사님이나, 확실한 거룩한 성령님의 경험 또한 말씀보다 중요하지 않다. - 엘리스테어 베그 기독교에서의 성경의 위치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전부이다. 성경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없다. 천지창조가 있어도 그것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가 살았었지만 그것 또한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성경은 사람들이 궁금할만 모든 것을 주장하고 설득한 책이 아니라 선포한 책이다. 그 위엄있는 선포 앞에 인간의 무능력과 한계, 죄 때문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다. 교회에서 예배가 있고 교제가 있지만 성경을 읽거나 공부하는 모임이 없다면 그것은 성경은 기독교의 전부가 아님을 시인하며 자인하는 꼴이다. 교회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 2014. 1. 2.
[지나가는 생각] 지적할 때 들을 줄 아는 사람 지적할 때 들을 줄 아는 사람. 나보다 타인이 더 옳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줄 아는 사람은 언제든지 생각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다. 뭔가 많아질 때를 조심해야 한다. 그때부터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는 교만함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많은 이단 사이비가 그렇게도 당당한 것은 돈이 많거나 지지세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단 사이비만 그러한가? 아니다 소위 정통이라 하는 자들도 이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오히려 이단보다 못한 도덕적 윤리적 불감증에 걸린 사역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크면 커질수록 많으면 많아질수록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만 옳다는 착각은 교만함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나또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기에 듣는 마음만은 포기하지 않고 싶다. 2012. 8. 31.
[어설픈 글쓰기] 신학과 고민하는 신앙 1. 신학에는 두 종류의 신학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교회를 살리는 신학, 다른 하나는 교회를 죽이는 신학이다. 2. 보통은 자유주의 신학이 교회를 죽였다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에는 자유주의 신학을 갖고 있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나도 자유주의 신학을 싫어한다. 그러나 완전히 배격하진 않는다. 3. 자유주의 신학이 교회의 흑역사를 가져온 것은 맞지만 개인에게 있어서는 진지한 신앙적 고민을 던져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 안에도 나름의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고민 없는 신앙이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그 고민의 결과물들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4. 신앙은 신비로운 것이기 때문에 고민을 동반한다고 생각한다. 이 고민은 때론 정설로 여겨지는 보편적인 것도 한번쯤 생각해.. 2012. 8. 12.
신학은 맹목적인 신앙을 견제하고, 신앙은 맹목적인 신학을 견제한다 신학은 맹목적인 신앙을 견제하고, 신앙은 맹목적인 신학을 견제한다. 2012년 5월 8일, 오후 8시 49분 2012.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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