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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글쓰기

이런 교회가 있다면?

by 더좋은소망 Pastor 2020. 7. 14.

이런 교회가 있다면 어떨까 싶은 생각 종종 해볼 때가 있다. 특히 이 3가지를 잘 하면 교회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부작용을 막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1. 주중 모임은 갖되 예배는 주일에만 드린다.
2. 빚을 지지 않는다.
3. 헌금은 헌금답게 사용한다.

1. 한국교회는 예배(혹은 예배라는 단어)의 남용이 있다. 새벽, 수요, 금요, 주일 오후, 주일 저녁 이 뒤엔 예배란 단어가 붙는다. 예배가 중요하지만 예배는 드리는 횟수와 형식, 출석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예배가 많을수록 형식적인 교인을 양상하는 위험성도 더 크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예배가 예배에 참석 했다는 자기 위안을 갖게 하는 요소로 변질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예배라는 단어가 부담으로 작용되기도 하며 혹은 직분자의 신앙의 상태를 점검하는 요소가 되어버릴 때도 있다.

한번이라도 제대로 예배를 드리고 신앙적으로 정서적으로 유익한 시간으로 사용해볼 수 있다는 것에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새벽엔 함께 모여 운동을 하거나, 수요일엔 성경읽기, 독서 모임을 갖거나 금요일엔 오직 기도회로만 모이거나 주일 오후는 교리, 성경공부의 시간으로 갖는다면 여러모로 유익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교회에서 예배로 모이지만 정작 교제가 없고 인사로 얼굴을 확인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여기에 주중 (구역, 속회) 모임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인사만 주고 받는 관계가 되어버린다.

2. 교회가 재정적으로 꼬이게 되는 첫 단추가 빚이다. 특히나 예배당으로 인한 빚은 부담 그 자체다. 빚을 내어 건축을 시도하는 목회자에게도 보증을 서는 중직자에게도 건축 헌금을 약정을 강요 받는 교인에게도... 누구하나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없다. 사랑의 빚 외에는 지지 말라는 말씀은 특히 여기에 적용되어야 한다. 빚은 개인의 빚만으로도 족하다. 어쩔 수 없는 빚지는 것과 스스로 만들어내는 빚은 다르다. 교회는 스스로 빚을 만들어 짐을 질 이유가 없다.

3. 교회 차원에서 2번을 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헌금을 헌금답게 사용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된다. 특히 십일조를 하고 안하고가 중요한게 아니라 헌금을 헌금답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십일조가 있던 십일조가 없던 어쨌거나 교회에서는 헌금이 발생한다. 이 헌금을 헌금답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십일조를 해야 할 이유 안 해야 할 이유를 토론하는 것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어쨌든 발생하는 헌금을 사용하는 것은 교회에게 맡겨진 사명 중 하나이므로 이것을 잘 해야 한다.

사실 생각은 쉽고, 말도 쉽다. 이런 생각과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 교회의 모습을 보면 교회의 고민의 흔적을 찾기 힘들 때가 있다. 지역, 세대의 문화적 차이와 상관없이 많은 교회들이 무형적 메뉴얼을 갖고 그 메뉴얼대로 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리고 많은 교회가 그 메뉴얼대로 따라간다. 자연히 발생하는 문제도 비슷비슷하다.

교회가 일부러 튈 필요는 없다. 개혁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단, 교회가 고민하는 전제하에 말이다. 고민은 필요하다. 고민 없는 교회는 화석화되는 과정 중에 있는 교회다. 생명력을 잃고 서서히 죽어가는 것 말이다. 본질을 붙들고 하는 고민 속에는 형식과 대세를 깨는 힘이 있다. 그런 고민이 누군가에게는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고민하기를 포기하고 메뉴얼대로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2013.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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