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Head), 머리(Hair)의 예배
(고린도전서 11장 2절 ~ 16절)
종교와 문화, 전통, 관례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복음을 전해서 세워졌는데 ‘고린도’에서도 그 지역의 ‘종교’, ‘문화’가 있었는데 2000여년전의 ‘고린도’에는 로마 제국 아가야 지방의 지방 수도였습니다. 대한민국으로 말하자면 ‘인천’이나 ‘부산’처럼 ‘항구 도시’였던 것이죠. 고린도에서 활발했던 것이 ‘무역’이나 ‘경제’였는데 그렇기 때문에 ‘금전’이 많이 오가는 도시였구요. 인구도 많았던 도시였습니다. 고린도의 종교적 배경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처럼 정말로 다신론적입니다.
당시 하나님, 그리스도가 아닌 사람들은 로마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은 ‘토가’라는 복장으로 자신들의 신에게 제사를 했었는데 그 신들은 사도행전 17장 23절 말씀처럼 ‘알지 못하는 신’에게 단을 쌓고 제사했던 사람들은 토가로 머리를 가리기도 했었는데 오늘 말씀을 다 들어보시면 바울이 남자를 기준으로 머리를 가리지 말라고 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예배’가 그들의 ‘제사’와는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준 것이기도 합니다.
[ 고린도 교회에 예배 형식을 가르쳐줬던 바울 ]
‘고린도’에도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세워졌던 교회가 고린도의 교회였는데 고린도 교회는 여러 문제들이 혼재되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바울이 본문에서 언급한 문제는 ‘예배’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이었던 사람들 타종교인들이었던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후에 많은 것들이 가르쳐줬었는데, 그것은 바울에 의한 전통이었습니다.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하나님을 몰랐던 예수님을 몰랐던 그들이 복음을 듣고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지를 그들에게 가르쳐줬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그 전통을 잘 지키고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질서하기도 했었던 것이죠.
고린도 교회는 오늘날로 말하자면 개종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예수님을 몰랐던 그들에게 가르쳐준 것 중에 하나는 어떻게 ‘기도’하고 ‘예언’해야 하는지였습니다. 그 예언은 무속인들이 말하는 그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 말씀입니다. 사실 본문에는 ‘예배’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어떻게 이 본문이 ‘예배’에 관련한 바울의 편지인지는 본문의 수신자들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수신자는 1인이 아닙니다. 2절에 ‘너희’, 3절도 ‘너희’라는 것은 복수형이죠. 그 여럿에 관련해서 바울이 편지를 쓴 것이었고 수신자도 ‘너희’ 즉 교회에게 쓴 것입니다. 그런데 5절 말씀을 보면 바울이 ‘기도’와 ‘예언’에 관해서 썼다는 것만 보더라도 바울은 지금 개인에게 쓴 것이 아니라 여럿에게 공중 예배 그러니까 서로 약속한 공예배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죠.
5절에서의 ‘예언’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한 개인의 시시콜콜한 개인사에 대한 미래 그러한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낭독된 말씀’이나 오늘날의 ‘설교’이며 예언인데 바울은 고린도 교회 내에 ‘무질서한 예언’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5절 말씀만 보면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여자가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하고 ‘예언’하는 것만을 말하고 있지만 고린도전서 14장을 보면 이 부분이 더 확장되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9절에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예언’은 그들이 모였을 때 있었던 ‘예언’입니다. 그들이 모여서 무엇을 했었냐면 오늘날 ‘예배’라고 일컬어지는 그런 시간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 예배는 초기 기독교의 ‘원시 예배’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이는 타종교에서 종교 의식이나 제사와도 구분됩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6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모였을 때는데 그들이 무엇을 했다는 것이냐면 ‘찬송’, 말씀을 가르치는 것, ‘계시’, ‘방언’, ‘통역’도 있었다는 것은 외부인과 타종교인들이 봤을 때 이상한 모임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그 ‘예배’가 ‘머리’ 본문에서는 ‘Head’(헤드)와 ‘머리털(Hair)’과 관련되어 있고 그 머리 중에서도 머리털을 가리는 것과 가리지 않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본문은 단순히 ‘머리’와 ‘머리털’과 ‘성’ 그러니까 ‘성별’과 관련된 문제까지 바울이 ‘남성’ ‘남자’가 무엇이며 ‘여자’, ‘여성’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 남, 여 서로에게 영광입니다 ]
머리는 사실 오늘날이나 과거나 성별을 구분하는데에 있어서도 분명한 성별의 특징중 하나인데요. 바울이 이러한 내용의 편지를 쓴 것을 보면 고린도 교회에서는 ‘성별 논쟁’도 있었던 것을 보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성 행위에 관련된 문제뿐만 아니라 “남자가 먼저냐” “여자가 먼저냐” “남자가 우월하냐 여자가 우월하냐”와 같은 성 차별 이슈도 있었던 것이죠. 바울은 예배에 관련한 ‘머리’와 ‘성별 논쟁’에 대해서 왜곡된 지식이나 무질서한 예배를 바로 잡고자 본문을 썼던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본문을 통해서 지식이 풍족하고 은사도 풍족했고 여러 분쟁과 논쟁이 오갔지만 그래도 전통을 잘 지키던 고린도 교회가 알기를 바랬던 것은 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니라”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누구에게 속했는지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는지에 대한 논쟁과 관련해서는 ‘복음’ ‘십자가’를 강조했었는데 본문에서는 교회 안에 각 성별 그러니까 남자와 여자의 머리가 누구인지를 말합니다.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이시고, 여자의 머리는 ‘남자’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 질서에 있어서는 분명히 남자가 먼저이지만 그보다 더 먼저이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성에 있어서나 신성에서 있어서나 아담과 하와보다 선재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누가 머리인지를 밝힙니다. 그러니까 신체, 인체에서 가장 윗 부분은 ‘머리’인데 그 머리 중에서도 여자의 머리도 있고 남자의 머리도 있는데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지만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성에 있어서는 남자가 먼저이고 여자는 그뒤인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머리가 누구에게 속해 있냐는 것이냐면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머리는 곧 하나님이시라고 기록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하는 동시에 성별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말씀에서 ‘남성’, ‘여성’의 근원이 ‘그리스도’시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아르헨티나’나 ‘미국’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아닌 X성을 법으로 인정하고 보호하려고 합니다. 성을 선택하는 자율성을 법으로 보장한다는 것인데 그건 말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성,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별은 뭐뿐인 것이냐면 ‘남성’과 ‘여성’뿐이라는 것입니다.
5절 말씀은 그렇게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는 사람이 어떻게 기도하고 예언해야하는지 예배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하면서 바울은 머리를 민 것과 다름없는 모습은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5절 말씀’만을 보면 여자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 같지만 ‘3절 말씀’을 보면 남자는 여자의 머리이기 때문에 5절 말씀과 같이 바울이 전해준 관습에서 벗어나 자신의 마음대로 기도하고 예언하면 그것은 남자던 여자던 모두가 욕되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자꾸 바울이 전해준 관례를 무시했기 때문에 그렇게 관례를 무시하는 것 자체가 서로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냐면 ‘머리’와 ‘머리털’과 ‘예배’, ‘성 질서’를 관련지어서 고린도 교회의 복잡한 무분별한 ‘성질서’와 ‘예배 의식’이 얼마나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과는 멀어져 있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7절 말씀에서 극대화 되는데요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이 말씀만 읽으면 남자만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11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8절로부터 9절을 읽어보면 바울은 지금 아담과 하와의 창조와 성별의 근원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강조하려고 쓴 것이 아니라 12절 말씀대로 근원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의 근원이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죠. 1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남자나 여자나 모두 서로에게서 났다는 것인데 그 위에 누가 계시냐면 하나님께서 계셔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났다고 말하시는 것이죠. 성별이 근원이 단순히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과학은 이를 풀지 못합니다. 남자와 여성의 근원을 풀지 못하지만 성경은 이에 대해 말합니다.
바울은 지금 고린도 교회가 남성과 여성이 누구에게서 났는지 그리고 그 위에 누가 계신지를 분명히 알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남자가 먼저지만 그렇다고 여자 없는 남자는 존재할 수 없고 그 존재 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남자는 머리를 가리지 말아야 하고 여자는 머리를 가려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머리가 곧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으며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의 영광이이시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의 예배, 그리고 분명한 성 정체성 그리고 그 근원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 머리 ]
그렇다고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주신 ‘법’이고 ‘의무’이냐 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저희가 아시다시피 예배에 관련해서 특정 형식을 정해주지 않으셨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고린도 교회를 향한 조언은 의무에 속하는 ‘법’이 아닙니다. 관례이죠. 16절에 바울은 이러한 교훈을 고린도 교회에게 썼을 때 이것에 대해 질문하려는 논쟁을 일으키려는 생각을 가진자들을 미리 염두에 두고 16절과 같이 말합니다.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 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그런데 오늘날에 ‘하나님의교회’ 이단에서는 자신들이 본문과 같은 전통을 잘 지키는 교회라고 말하면서 여자들은 ‘머리 수건’을 쓰기도 하는데요.
바울이 본문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그러니까 본문에서 머리를 기르고 자르고 말하고 있기보다는 머리에 무엇을 쓰고 말고가 아니라 기르고 자르고가 아니라 그것은 관례일뿐이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는 서로의 성이 다르더라도 꼭 필요한 존재이며 그 근원은 성을 지으신 ‘하나님’이시고 성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은 ‘본성’이 우리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의 성을 속이지 말라고 하는 것이고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영광이신 예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말은 2절 말씀과 7절 말씀, 12절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서로는 머리가 된다는 것이고 영광이 되며 그 근원은 하나님이시라는 것 남성과 여성 서로 다른 것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것, 주 안에서는 남자 없는 여자가 없으며 여자 없는 남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의 질서보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은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아닌 사람들 타종교인들과의 문화와 관습과 전통에 있어서도 구별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처음에 보여드린 토가를 입고 제사 예배했던 외국인들은 그들만의 신의 영광에 자신을 감추는 것이지만 기독교는 오히려 그 영광이신 예수님 앞에 머리를 드러내며 주님을 예배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마주하는 것이 예배인 것이죠. 그래서 요즘에는 ‘묵도’와 같이 머리를 숙이는 것은 일제 신사참배의 잔재이기 때문에 개신교 예배에서 없어지는 추세인 것이죠.
오늘날 교회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울이 본문을 통해서 고린도 교회에 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질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성(성) 질서는 그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는 믿음이며 그것이 예배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계속해서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다라고 여길 때 그러한 문화를 만들어갈 때 저희는 그것과는 구별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한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남자와 여자로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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