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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나

하나님께서 주신 유월절의 참 뜻과 교훈

by 더좋은소망 Pastor 2022. 8. 5.

여호와의 밤, 유월절
(출애굽기 1237~ 51)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경험되는 시간과 상황이 있는데요. 바로 약속과 기다림입니다. 것은 하나님을 믿건 믿지 않건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입니다. 약속은 다른 말로하자면 정해진 어떤 것인데 아직 현실이 되지 않은 것입니다.

히브리 민족,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약속하신 것인데 그 약속은 현실이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냥 약속일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의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약속이 가까워지는데 바로는 10재앙이 발생할 때까지 완강하고 완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신 재앙의 범위를 보면 처음에는 강이 피가 되는 재앙이었습니다. 사실 바로가 이러한 현상만 봐도 뭔가 잘못되었구나’ ‘이런 현상은 왜 발생하는 것이지?’라는 물음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람이 완강하면, 완악하면 듣지 않습니다. 듣지 않는다는 것이 귀가 없어서 소리가 없어서 듣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말에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목석처럼 가만히 있는 것이죠. 대웅전에 불상처럼 그냥 꼿꼿하게 있는 것입니다. 바로가 딱 그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가 그렇게 완악하고 완강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의 장자와 가축을 치시니까 바로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던 것이죠. 그전까지의 재앙도 애굽 사람들에게는 악재였는데 사람이 죽는데 히브리 이스라엘 사람들은 살아 있으니까 이거 여호와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건가?’ 했던 것이죠. 출애굽기 12 31절에 바로의 말만 봐도 그렇습니다. 바로가 뭐라고 말했냐면 출애굽기 12 31 말씀입니다.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바로는 은연중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는데 그것은 사실 믿음보다는 이해 지식에 가까웠던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자꾸 듣거나 봤을 때 생기는 그러한 것이었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며 나에게 중요한 분이시라는 것과 같은 긍정형의 믿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인정하는 그러한 믿음이었던 것이죠.

이러한 상태는 현대인들에게도 발견되는 종교성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을 보니 뭔가 이상하고 하나님이 계신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그런 상태인데 바로의 상태가 그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가 결단을 하는데 그 결단은 히브리, 이스라엘 사람들을 애굽에서 내보내는 것이었습니다. 히브리,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정착민에서 난민이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입히셨는데 누구에게 은혜를 입혀주셨냐면 본문 앞에서 출애굽기 12 36절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혀 주셨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는 완악해졌어도 백성들에게는 은혜를 입혀주셨던 것이었습니다. 오늘날로 이야기하자면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는 통수권자는 완악하게 하셨어도 자국민과 제3국가의 국민들에게는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죠. 오늘날 전 세계의 강대국은 미국과 중국인데 그 국가에 자국민이 있잖아요? 미국이야 그렇다쳐도 중국은 공산국가라 종교의 자유가 없는데 시진핑이 명목상으로 삼자교회를 두고 통제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죠. 그렇게 종교의 자유를 열망하는 국민들이 분명 존재할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권력자들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지만 그 국가에 있는 기독교인들이나 제3의 국적 국민들에게 하나님께서 살 길을 주셨다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지금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 히브인들과 애굽의 평범한 국민들에게 그러한 은혜가 있던 중에 바로가 급박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쫓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미국에 있는 멕시코인들을 추방하는 것과 같은 그런 상황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바로가 자국민들을 보호하고 이방인들을 추방하기로 작정했던 것이죠. 그렇게 갑작스럽게 상황이 급박한 중에 히브리인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식료품입니다. 또한 그 당시에도 옷이 필요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평범한 국민들에게 은혜를 입히셔서 그들이 구하는 것마다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할 수있게 되어서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애굽을 떠날 수 있는 탈출하게 되는 그러한 상황이 됐던 것이었습니다.

[ 쫓겨남이 인도하여 내심이었습니다 ]

애굽에서 살던 히브리 민족,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이 급박해졌습니다. 그때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었냐면 본문 39절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39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

그들은 아무런 준비가 없이 애굽을 빠져 나왔어야 했습니다.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라는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의로 애굽에서 나가게 된 것이 아니라 바로에게 쫓겨나는 상황이었는데 지체할 수 없다는 것은 멈추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 먹을 것을 준비할 수도 없는 상화이었다는 것이죠. 사람이 아무리 급해도 생존을 위해서는 먹어야 하는데 그때 당시에는 그것이 가능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430년만에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본문 41절은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군대’였다고 기록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그들이 누구라고 합니까? ‘군대’래요. 저희가 보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인데, 모세가 보기에는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여기셨는지를 볼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군대’라는 단어는 본문 41절에만 쓰였던 것이 아니라 앞서 기록된 출애굽기 6 26절 말씀에도 이와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의군대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라 하신 여호와의 명령을 받은 자는 이 아론과 모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급박하게 쫓겨났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군대로 보셨던 것이고, 그 군대가 하나님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430년의 세월이 햇수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에게는 ‘노역자’ ‘노예’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의 싸움을 싸우는 전쟁을 치루는 ‘군대’였던 것이었습니다. 히브리인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노역의 일을 했지만 그것이 자신들이 사는 방법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가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엄청나게 뜨거운 환경에서 노역의 생활을 견디면서 그들은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강인해졌겠죠.

오늘날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태양빛을 자주 쬐지 못하는 실내 근무자들보다 태양빛을 쬐는 육체 노동자들 중 누가 건강할까요? 그러니까 신체를 골고루 사용하는 노동자들이 건강할까요? 아니면 신체의 일부분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건강할까요? 위험성에 있어서는 실외 근무자가 위험하겠지만 실외 근무자들이 신체를 골고루 사용하기 때문에 사람이 더 건강할 것입니다.

몇 년전만 하더라도 저가 부모님과 함께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았었는데요. 환갑이 넘으신 아버지가 굉장히 화가 많이 나 있는 상황이었는데 저가 저지할 수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저지할수 없었습니다. 육체 노동으로 단련된 몸이 어찌나 딴딴하고 힘이 얼마나 좋던지 어쩔수가 없더라구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된 노역으로 지치기도 했었지만 그러한 환경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던 것이죠.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모세는 자신이 인도했다고 말했던 것이 아니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라는 표현을 쓸만큼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강제적으로 그렇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 출애굽의 날이 얼마나 역사적으로 중요했냐면 모세는 그 날을 뭐라고 기록했습니까? 4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 그 밤이 여호와의 밤이었다고 말합니다. 그 밤은 역사적인 밤이었기 때문에 누가지켜야 했냐면 이스라엘 자손이 지켜야 했던 것이죠.

[ 동일한 법이 있습니다 ]

 그 역사적인을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부르셨냐면 유월절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유월절은 안상홍증인회 그러니까 오늘날의 이단 사이비 하나님의교회 지키는 어떤 날짜를 지키는라고 했던 것이 맞지만 이스라엘 사람들 오늘날 유대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날짜 날이 아니라 무엇입니까? 유월절에 담긴 단어 Passover, 히브리어로 유월절은 페싸흐인데 이 페싸흐에 담긴 뜻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 뜻이 무엇이에요? ‘묵과함’, ‘면제라는 뜻이 이 페싸흐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이스라엘 첫 장자들을 치지 않으시고 넘어가셔서 유월절 규례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럼 이 유월절은 오늘날 어떤 절기냐면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된 절기인데 그분은 유월절을 지키신 것이 아니라 유월절에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패스오버 면제 해주셨다는 것을 극대화 하시기 위해서 그 날에 자신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떡 오늘날 한국 사람들이 먹는 그런 떡이 아니라 찢어먹는 빵과 포도주를 주셨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유대 사람들만 먹는 그런 것이 아니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대하는 것입니다.

본래 이 유월절은 1차적으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했던 것인데 하나님께서 페싸흐 하신 것을 기억하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그것을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라고 했었던 것입니다.

본문 43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유월절에서 이방 사람은 먹지 못할 것이라고 하셔서 이방 사람들을 배제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44절 말씀을 보면 돈으로 산 종 그러니까 그 종은 본문 38절 말씀에 있는 잡족에 해당되는 사람일수도 있는데 그 사람도 할례를 받으면 유월절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이구요. “거류인과 타국 품꾼은 먹지 못하리라라고 하나님께서 45절에 말씀하셨는데 48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이던 잡족이던 종이던 상관없이 유월절을 지키고자하 한다면 지킬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할례를 받으면 본토인처럼 여겨진다고 말씀하셨던 것이었죠.

이 규례 법은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페싸흐 넘어가는 되는 사람이 이스라엘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것을 말씀하셨던 것이었습니다. 4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본토인에게나 너희 중에 거류하는 이방인에게 이 법이 동일하니라 하셨으므로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타국인이던 잡족이던 상관없이 그들을 넘어가시길 바라셔서 준 규례가 이 유월절 규례이지 안상홍교에서 말하는 그것과 그 절기를 지키는 사람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여긴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월절 규례, 법 제정의 중심, 핵심은 페싸흐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지 그것을 지키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월절에 법적인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때 애굽 사이를 지나신 하나님 넘어가신 하나님 이스라엘을 치지 않으신 하나님께 그 초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해하니까 안상홍교인들은 그것을 지켜야하고 그것이 무슨 새언약 유월절이니 뭐니 하는 것이고 자신들만 그 언약을 지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초점은 유월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묵과하시는 하나님 그 날에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묵과하신 하나님 면제해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잡족들, ‘본토인 그러니까 앞으로 가게 될 ‘가나안 사람이나 가나안에 살고 있는 ‘제3국가’의 사람들도 염두에 두셨던 것입니다. 무엇을 뜻하는 것이죠? 특정 민족, 국가, 부류 특정 교회 특정 집단에게만 구원이 있고 구원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 ‘유월절 규례’를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스라엘에게는 ‘의무적인 법’이지만 48절 말씀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잡족인들이나 이방인들이 지키고 싶으면 지킬 수 있는 그런 규례, 명령이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뜻하는 것이죠? 이 유월절 규례, 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의무였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의무가 아니라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유월절에 하나님께서 지나셨다는 것 묵과하셨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무거운 노역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내셨다는 것이구요. 이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었던 ‘고기’는 모든 것을 내어주신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싶은 사람들 또한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이 대하는 ‘성찬’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모든 무거움으로부터 노역으로부터 인도해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을 그것으로 두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을 예수 그리스도께 지우시고 그것을 기억하는 백성들을 인도해내시는 하나님이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페싸흐 패스오버,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죄의 무거움을 묵과해주시고 면제해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페싸흐 하시는 하나님, 묵과하시는 하나님 지나가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함으로 어떤 절기를 구원의 조건이나 과정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히브리 사람들에게나 잡족의 사람들에게나 이방인에게나 동일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함으로써 넘어가주신 하나님 간과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그것이 감사해서 하나님을 섬기며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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