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본문 바로가기

어설픈 글쓰기98

나타나실 그리스도를 바라는 삶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후 백성들은 그 예언을 들었으나 그리스도를 눈으로 볼 수 없었다. 그러나 2000년전 유대 사람들은 선지자들이 활동하던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봤다. 선지자들의 예언을 들었던 사람들이 당대에는 그리스도를 목격하지 못하고 때가 차서 후대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봤던 것처럼 현재의 신약 백성들도 그리스도를 듣지만 보진 못하고 있지만 때가 차면 그러나 보게될 것이다. 그때엔 유대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이다. 2022. 10. 25.
주님께 사람의 마음은 주님께 사람의 마음은 도어락(Door Lock)과 같습니다. 패스워드가 있어서 비밀인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그분은 패스워드를 터치해서 들어오실수도 있지만 그걸 터치하는 사람은 '나'이어야 합니다. 2022. 10. 25.
과거에 지었던 죄가 생각나는 이유는 과거에 지었던 죄가 생각나는 이유는 회개한 죄가 불현듯 생각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사탄은 과거의 죄를 미끼로 삼아 우는 사자와 같이 덤벼듭니다. 옛 죄를 갖고 집요하게 믿는 자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고발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흘리신 피를 증거삼아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으로 우리를 변호해주십니다. 죄 앞에서는 우리는 속죄하신 예수님을 믿고 그 공로를 의지하여 은혜를 사모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김가람 목사 2022. 9. 28.
에덴 : 하나님의 창조 사역 후 오리지널 가정 가정, 교회는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천국의 모형입니다. 그러나 완전하진 않습니다. 때때로 다툼과 아픔도 있지만 기쁨과 즐거움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시고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으시다는 것이 하나님의 평가였습니다. 2022. 7. 6.
'구원파'에서 말하는 영적 생일이 따로 있는가? 기독교 이단 기쁜소식선교회(구원파 박옥수측)에서 주장하는 영적 생일이 따로 있는가?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 3:8) 우리는 구원일을 알 수 없습니다. 그들에 주장대로라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죄를 씻어주신 날이 바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날인데, 그렇다면 모든 신자들의 구원일은 그날인 것이 됩니다. 그러나 구원파에서 박옥수 계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날도 아니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날도 아니요, 성령 체험한 날도 아니요. 구원일을 알아야 구원받았다고 하는데... 그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을 말미암아 모든 죄가 사해졌는데, 그렇다면 그날이 구원일이지 어째서 날짜가 제 각각 일까요. .. 2022. 7. 6.
그리스도인의 식생활 채식주의만이 옳은 것일까요? 세상이 창조된 직후에는 채식만 했었어도 오늘날 크리스천들은 채식뿐만 아니라 육식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야채만 주신 것이 아니라 물고기와 빵도 먹이셨습니다. 2022. 7. 6.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의 ) 이름으로 오신 예수님 (마 1:23)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20)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그 이름으로 보내신 성령과 동행하는 삶이며 삶에서 그분을 의식하는 삶인 것 같습니다. 때때로 삶의 자리에서 우리는 다양한 일 또는 학업(공부)을 해야하고 가정에서 또 친밀한 사람과 놀기도 하죠.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의식하며 사는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아닐까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의 기준과 시선을 의식해야하기도 .. 2022. 7. 6.
예언의 은사가 무엇일까요? 목사가 예언의 은사 운운하면서 개인의 미래를 안다고 말하면, 예언의 은사로 포장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 예지(豫知)를 침탈하는 행위입니다. 사람의 미래는 하나님만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예언은 성경이며 이때의 예언은 미래를 추측하는예측 그런 것이 아니라 맡길 예에 가깝습니다. 무당들이 점 보러 오는 사람에게 이렇지? 이럴거야 미래를 말해주는 그런 예언이 아닙니다. 목사는 자기 자녀가 하루에 소변을 몇번 볼 것인지도 미리 알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예언한다는 목사에게 속지 마세요! 특히 대한민국에 관한 예언을 받았다는 신사도주의 목사들을 특히나 주의해야 합니다. 2022. 6. 18.
인간의 시간을 한 눈에 보시는 하나님 C.S루이스는 사람은 과거 현재만 알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번에 한순간 보시고 아신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오늘이 2022년인것이지 하나님께는 과거 현재 미래를 압축해서 보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시간 개념과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영원이라는 개념도 그래서 사람이 알 수 없는 시간 표현 개념인 것입니다 사실 성령으로 감동된 베드로가 먼저했던 표현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벧후 3:8) 2022. 6. 18.
오늘날 육성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가? 육성으로 그러니까 사람의 말 소리처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시대는 이미 종결됐습니다. (이미 사람이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육성의 때가 종결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설교자와 가르치는 자들은 자신이 만의 하나 특별한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표현으로 말해서 자신이 신령한 경험을 한 사람처럼 여겨지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말씀보다 앞선 경험과 체험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영적인 성장을 도우시길 바라셔서 교회에 가르치는 직분을 두셨기 때문에 그분들을 통해서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알아가고 깨달을 수 있기도 합니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2022. 6. 18.
그리스도 주님과 교제하는 삶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전1:9)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골1:15)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함께 계심으로써 교제하시는 분이시고 우리는 그것을 앎으로써 기도를 통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삶이 주님과의 교제하는 삶이 아닐까요? 그 형상 따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에 인격적인 그분과 교제하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2022. 6. 18.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도 사랑하시나? 현재 믿음을 가진 이방인이었던 나를 생각해보면 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백성이 아니었던 '한국'이라는 나라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불신자들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나 그들의 믿음, 구원의 때는 알수가 없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과 불신자들의 구원은 구분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믿음을 갖게 됐는지를 떠올려본다면 그들도 믿음을 갖게될 때가 있을지 없을지는 저희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복음을 접하고 듣게 해야하지 않을까요. 2022. 6. 17.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오늘날은 초대교회 시대 때 핍박, 기독교가 공인이 되기 전 로마시대 때 세상 권력이 교회를 핍박하던 그런 시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도 코로나 때이지만 대한민국과 행정부를 보면 교회를 핍박하지 않더라구요. 코로나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있던 때도 그랬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난 상황인 현재도 그렇구요. 앞으로 초대교회, 우리나라 기독교(개신교) 초기 일제강점기 때와 같은 그런 핍박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신약교회가 태동하던 2000여년전보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오던 100여년전보다 하나님 예수님 믿으며, 교회에 출석하기 쉬운 때라는 것입니다. (물론 가정의 문화에 따라 편차는 있겠지만요.) 코로나를 거치면서 건물로서의 교회밖/안의 구분이 희미해지는 때인데 그래서 교회에 있느.. 2022. 6. 11.
섬김과 헌신, 열정과 순수함도 메시지입니다.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가 내가 듣고 싶은 메시지가 아니라고 해서 불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교회에서 배울게 없다며 교회를 멀리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신앙 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라며 착각하지는 않습니까? 강대상을 향하는 그 시선과 함께 옆도 봐야 합니다. 장로님의 인품과 권사님의 섬김 집사님의 헌신과 교사의 열정 학생들이 따르는 것과 아이들의 순수함을 배워야 합니다. 앞에 있는 강단만을 보지 말고 옆도 봐야 합니다. 그럼 배울수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보고 배우는 것은 예배당 안에서만 듣고 느끼는 것보다 중요할 수 있다. 선포되는 설교가 중요하지만 그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인 것처럼 여기는 태도만큼 얄팍한 신앙도 없습니다. 2022. 6. 8.
속죄의 성질 속죄의 성질 · 죄인편에서 하나님과 화해하는 문제를 논할 수 없다. · 그리스도에 의한 객관적 속죄는 성취된 사실이고, 이제는 죄인들로 하여금 그 속죄를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적의를 멈추도록 인도하는 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의 대사들의 사명이다. · 속죄는 인간과 하나님의 화해로써 하나님께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케 하셨음은 저희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않으신 사실에 의해 분명해진다. 이는 인간속에 어떤 도덕적 변화가 일어났음을 뜻하지 않고, 단지 율법의 요구가 충족되었으며 하나님께서 만족하신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 죄의 삯은 죄인의 대표자인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께 지불되었다. 속죄에서 피해자측에 배상하는 것은 언제나 가해자측인다. ·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대리자로 세우셨고, 이 대리자.. 2022. 5. 5.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