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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글쓰기

세련됨을 버려라

by 더좋은소망 Pastor 2007. 6. 18.


오늘날의 사회는 세련됨을 멋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동경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불행하게 되는 덧이 숨겨져 있다. 세련됨을 추구하고 찾는것에는 물질적인 것들이 따르게 된다.

예를 들면 나의 모습을 세련되게 하기 위해선 빛깔나는 악세사리를 착용해야 하고, 값 비싼 옷을 입어야 한다. 물론 최저의 비용을 들여 세련 됐다고 하는 그 무엇을 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과 사람은 보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묻는다. 어디꺼야? 라고 말이다.

결국 세련된 것이 멋인것처럼 생각하고 많은 비용을 들인이는 그렇지 못한이를 보고 우쭐될 것이며, 적은 비용을 들여 그것을 따라한 이는 세상과 사람들의 비교로 열등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오늘날 교회도 이를 무시할 수 없다. 현재 많은 교회들은 건물은 말할 것도 없고, 그안에 세련되게 보이기 위하여 갖가지로 그 건물을 채우고 있다. 예전에 나는 깜짝 놀랄만한 한마디를 들었다. 교회에 있는 강대상에 관한 이야기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강대상의 값이 수백만원이나 된다는 것이였다. 중요한건 그 모든것들이 "헌금"이라는 이름 아래 있다는 것이다.

OO헌금이란 이름아래 교회당을 치장하기 위하여 꽃꽂이를 하고, 좀 더 좋은 음향시설을 세팅하기도 한다. 일각에선 이렇게 이야기 할 수도 있다. "영광을 돌리기 위한것인데 무슨 문제가 되는가?" 문제는 성경은 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질문의 부재이다.

만약 교회들이 이 질문을 갖고 있는다면 값비싼 물품들을 교회에 두지 않을것이다. 또한 이러한 교회에 출석하는 개개인의 형편을 분명히 알고 있는 진정한 직분자들도 그렇게 하지 않을것이다. 오히려 그 화려함에 보태는 대신, 초대 교회의 성도처럼 소유를 팔아 도울것이다.

우리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세련됨과 아름다움을 버려야 한다. 예수님께선 영광의 모습을 벗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의 소유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예측하건데 옷 한벌이 전부였을 것이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당시 부유층이 보기에 볼품없는 모습이셨을지도 모른다.

이는 다 가난한 자들과 과부와 고아를 위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런 모양새로 왕궁에 갔다면 쫓겨날게 뻔하지 않은가? 그분의 친구는 가난하고 병들었고 배고팠던 사람들이었다. 세련됨과 아름다움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 그 어느 누구에게나 친구되는 일이고, 참된 영광의 예수님을을 따르는 일이다.

작성일: 2007년 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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